2025.10. 12.
✦ 독일에 가다 (11) – 당황의 시작
그동안의 여정은 대체로 순탄했다. 스트라스부르와 프라이부르크를 지나 독일 남서부의 바트 크로징겐으로 향하는 길도 무리 없이 이어졌다. 그런데 기차가 멈춰 서고, 역 플랫폼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예상치 못한 당황이 시작되었다.
역을 나서자 눈앞에 펼쳐진 것은 우리가 기대했던 유럽의 작은 도시 풍경이 아니었다. 기차역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단출했다. 철로 담벼락만 덩그러니 서 있었고, 그 너머엔 시골 버스 정류장과 텅 빈 주차장이 전부였다. 분주한 상점가도, 환영하듯 반짝이는 간판도, 여행객을 맞이할 분위기도 없었다. 마치 어디론가 잘못 내려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게다가 각자 캐리어를 끌고 있는 상황이라 섣불리 움직일 수도 없었다. 점심시간은 훌쩍 지나 있었고, 배는 고파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방을 둘러봐도 길잡이가 될 만한 단서가 보이지 않았다. 보통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면 기차역이나 버스 정류장 근처에 늘어선 상가에서 간판을 읽고, 구글 지도로 방향을 확인하곤 한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지도를 켜도 방향감각은 엉켜만 갔고, 눈앞엔 낯선 풍경만 가득했다.
잠시 당황이 이어졌다. 그러나 우리에겐 ‘MZ세대’가 있었다. 빠른 손놀림으로 스마트폰을 켜고 검색을 시작하더니 곧바로 방향을 잡아냈다. 지금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지도가 알려주는 길을 따라가면 된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다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독일의 중소 도시 기차역은 대부분 이런 구조였다. 철로 두 줄이 덩그러니 있고, 지하 통로를 통해 반대편 광장으로 나가면 비로소 도시의 중심이 드러나는 형태였다. 한국처럼 수많은 출구가 있거나, 어느 쪽으로 나서도 상점가가 반겨주는 구조를 기대한 것이 잘못이었다.
실제로 지하 통로를 지나 반대편으로 나오자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광장 한가운데 분수가 시원하게 물줄기를 내뿜고 있었고, 식당과 상점들이 늘어서 있었다. 사람들의 발길도 이어져 마침내 우리가 상상했던 ‘작은 도시의 역 앞 풍경’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배고픔은 더는 참을 수 없어 곧장 광장 앞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점원은 영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order”, “pay”, “how much” 같은 기초 단어조차 통하지 않았다.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메뉴판을 들여다보았는데, 그림조차 없어 더 난감했다. 순간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글자를 살펴보니 ‘Pizza’와 ‘Kebab’ 정도는 독일어라 해도 알아볼 수 있었다. 결국 익숙한 단어를 골라 주문을 마쳤다.
하지만 음식이 나오고 나서 또 한 번 놀랐다. 케밥이라고 해서 흔히 떠올리는 빵 속에 고기와 야채를 돌돌 말아 넣은 부리또 형태가 아니라, 접시 위에 모든 재료가 풀어헤쳐진 채로 나왔다. 고기, 빵, 소스가 따로따로 놓여 있고, 곁들임으로 나온 샐러드는 우리나라 시골식당에서 나올 법한 투박한 모양이었다. 잘게 다듬은 샐러드가 아니라 오이 서너 조각, 토마토, 양배추가 큼직하게 썰려 올려져 있었다. 정갈하다기보다는 소박한 느낌이 강했다. 다행히 피자는 익숙한 맛을 내 주어 허기를 달래는 데 충분했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처럼, 배가 고팠던 탓에 음식은 그 순간만큼은 특별히 더 맛있게 느껴졌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독일 중소도시에서 ‘독일식당’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전통적인 독일 음식점은 거의 없고, 외식이라 하면 대부분 피자였다. 간혹 케밥집이 보이거나, 드물게 그리스 요리점이 하나 있는 정도였다. 심지어 대도시인 프랑크푸르트조차도 가장 유명한 음식점이 쌀국수 집일 정도였다. 결국 독일에서의 외식은 사실상 ‘피자를 먹는 일’과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바트 크로징겐에서의 첫인상은 낯섦과 당황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러나 여행이란 원래 이런 예기치 못한 순간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 법이다.
2025년 10월 12일
재미미디어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