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23.
2025.11.23.
— 렌터카와 함께 시작된 진짜 일정
재미미디어 | 권석진 기자
입력 | 2025년 11월 23일 06:00
[기사원문]
렌터카의 열쇠를 손에 쥐는 순간, 이번 독일 체류의 성격은 분명해졌다. 더 이상 관광 동선에 몸을 맡기는 여정이 아니라, 정해진 시간과 목적지를 향해 움직여야 하는 ‘일정의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이번 체류의 중심에는 뮌스테탈 테라피 스튜디오가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열리는 ‘댄서들을 위한 자이로토닉 마스터 코스’. 이름만으로도 이 여정의 무게를 짐작하게 하는 교육 과정이었다.
교육은 매일 오전 10시에 시작된다. 숙소에서 스튜디오까지는 차량으로 약 20분 남짓. 단순히 계산하면 9시 30분에 출발해도 충분했지만, 낯선 도로와 독일식 교통 환경을 고려해 오전 9시 무렵, 비교적 이른 시간에 차를 몰았다. 시간에 쫓기며 시작하는 하루만큼 불안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
사실 운전대에 손을 얹는 순간부터 마음은 편치 않았다. 독일에 오기 전부터 수없이 들었던 이야기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과속카메라는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조금만 넘겨도 찍힌다”, “과태료는 국경을 넘어 한국까지 날아온다”, “금액은 상상 이상이다.” 실제로 경험한 사람들의 후기일수록 더 생생했고, 그만큼 긴장감도 컸다. 렌터카를 몰고 나서는 순간, 발끝의 감각 하나까지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도로 위 풍경은 한국과 여러모로 달랐다. 편도 1차선의 시골길인데도 제한속도가 갑자기 50km에서 100km로 바뀌는 구간이 등장했다. 한국이었다면 자연스럽게 뒤차의 압박을 느끼며 속도를 올렸을 테지만, 이곳에서는 그런 분위기가 거의 없었다. 뒤차가 바짝 붙어 위협하는 일도, 경적을 울리며 재촉하는 모습도 드물었다. 대신 도로 위의 모든 차들이 표지판을 기준으로 정확히 움직이고 있었다.
흥미로웠던 점은 속도가 낮아질 때였다. 제한속도가 50km에서 40km, 다시 30km로 떨어지는 구간에서도 과속카메라는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럼에도 모든 차량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정확하게 속도를 줄였다. ‘카메라가 있으니 지킨다’가 아니라, ‘규칙이 있으니 지킨다’는 문화가 도로 위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이 차이는 운전자의 심리를 완전히 다르게 만든다. 눈치를 보는 운전이 아니라, 규칙을 신뢰하는 운전. 독일의 교통 질서가 왜 안정적으로 유지되는지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뮌스테탈로 향하는 길에는 로터리가 유난히 많았다. 하나 둘 세다 보니 열 개를 훌쩍 넘겼고, 나중에는 열두 개에 이르렀다. 체감상으로는 꽤 오랜 시간 운전한 듯 느껴졌지만, 막상 도착해 보니 실제 주행 시간은 20여 분에 불과했다. 흐름만 잘 타면 빠르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구조. 서로의 약속이 전제될 때 가능한 시스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튜디오에 도착해 일행인 예비 마스터를 내려주고, 나는 차량을 주차장에 세웠다. 이 과정에서도 또 하나의 교훈을 얻었다. “독일에서는 시골이라고 해서 아무 데나 차를 세워서는 안 된다.” 한국처럼 잠시 정차했다가 이동하는 문화는 통하지 않았다. 정식 주차 구역인지, 허용된 공간인지가 분명하지 않으면 그 자체로 불안 요소가 된다. 결제 기계조차 없는 공간에서는 더욱 그랬다.
마침 숙소에서 제공받은 무료 교통티켓이 떠올랐다. 이 티켓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하나의 원칙이 만들어졌다. ‘차량은 스튜디오와 숙소에만 주차한다. 그 외의 이동은 모두 대중교통으로 해결한다.’ 이 원칙은 이후 일정 전체를 관통하는 기준이 되었고, 결과적으로는 독일의 교통 시스템을 더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날의 이동은 단순한 출근길이 아니었다. 자이로토닉이라는 교육을 중심에 둔 체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첫 장면이었다. 렌터카와 함께 열린 이 여정은, 이후 이어질 수많은 선택과 이동의 기준점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