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9. 14.
2025. 9. 14.
재미미디어 | 권석진 기자
입력 | 2025년 9월 14일 06:00
[기사원문]
지난 기사에 이어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당초 계획했던 렌트카 여행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바트 크로징겐과 뮌스테탈을 잇는 구간은 프라이부르크에서 렌트할 예정이었고, 일정상으로도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다만 문제는 그 이전 구간이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출발해 스트라스부르를 거쳐 다시 독일 남서부로 내려가는 약 300킬로미터에 이르는 여정은 초행길 운전자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왔다. 아우토반 주행, 국경 이동, 낯선 도로 환경까지 고려하면 체력과 집중력을 동시에 요구하는 일정이었다.
결국 판단은 ‘보류’였다. 렌트는 뒤로 미루고, 기차 이동을 선택했다. 일정이 바뀌자 예상치 못한 여유가 생겼다. 기차 출발까지 남은 시간 동안 프랑크푸르트를 둘러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원래 계획대로였다면 프랑크푸르트는 그저 경유지, 잠시 머물다 떠나는 관문에 불과했을 도시였다. 그러나 선택 하나로 도시를 바라보는 시선은 완전히 달라졌다.
일행 가운데는 20대 대학생 한 명이 있었다. 흔히 말하는 ‘MZ세대’였다. 영어도 능숙하지 않았고, 독일어는 거의 읽지 못했다. 출발 전까지만 해도 그는 도움을 주기보다는 보살펴야 할 대상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일정이 바뀌며 상황은 달라졌다. 그는 마치 경기 막판 흐름을 뒤집는 버저비터를 던지듯, 여행의 방향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향한 곳은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내 짐 보관소였다. 처음 발견한 보관함은 오래된 방식으로, 동전을 넣고 열쇠로 잠그는 구조였다. 공간도 비좁아 캐리어 두 개를 넣기에는 빠듯해 보였다. 잠시 망설이는 사이, MZ는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을 시작했다. 이내 그는 신형 보관함 위치를 찾아냈고, 그곳은 카드 결제가 가능하며 내부 공간도 훨씬 넉넉했다. 계획에 없던 첫 번째 선택부터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짐을 맡긴 뒤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의 발걸음을 따라 나섰다. 첫 번째 목적지는 마인 타워(Main Tower)였다. 필자는 서울의 초고층 전망대조차 가본 적이 없어 큰 기대를 품지 않았지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마주한 풍경은 생각보다 강렬했다. 마인강을 따라 펼쳐진 도시의 윤곽, 고층 빌딩과 오래된 건물이 공존하는 풍경은 프랑크푸르트가 단순한 금융 도시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두 번째로 향한 곳은 프랑크푸르트 구시가지의 중심, 뢰머 광장(Römer)이었다. 수십 년 전 배낭여행 시절 잠시 들렀던 기억이 남아 있던 장소였다. 당시의 인상은 흐릿했지만, 막상 다시 서 보니 공간의 구조와 분위기는 크게 변하지 않은 듯했다. 광장을 둘러싼 전통 건물과 노천 카페,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는 시민들의 모습은 도시가 품고 있는 시간의 깊이를 느끼게 했다.
뢰머 광장에서 이어진 프랑크푸르트 대성당(Dom St. Bartholomaus)은 이번 여정에서 가장 인상적인 공간이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들의 대관식이 열렸던 장소답게 외관은 웅장했고, 내부는 차분했다. 특히 필자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관광객 사이에 앉아 있던 어린이들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교사의 설명을 조용히 들으며 성당 내부를 바라보고 있었다. 긴 시간 집중력을 유지하는 그 모습은, 건축물 자체보다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마지막 일정은 식사였다. 이 역시 MZ가 검색을 통해 찾아낸 곳이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오래된 식당이지만 한동안 주목받지 않다가, 한국인 관광객의 SNS를 통해 다시 알려진 집이었다. 슈니첼은 한국식 돈가스를 떠올리게 했고, 슈바인학센은 바삭한 족발과 닮아 있었다. 굴라시는 담백했지만 일행 대부분은 만족스러워했다. 식당 안 손님의 절반가량이 한국인이었고, 나머지도 동양인 관광객이 대부분이었다는 점은 이 도시가 이미 여러 방식으로 소비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두 시간 남짓한 짧은 프랑크푸르트 일정은 예상치 못한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그 여정을 이끈 주인공이 처음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대학생 일행, MZ였다는 사실이다. 계획은 어른이 세웠지만, 현장을 움직인 것은 디지털 감각과 즉각적인 판단력이었다. 렌트카 대신 기차를 선택한 결정은 그렇게, 프랑크푸르트를 새롭게 발견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