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 16.
2025.11. 16.
— 렌터카에서 시작된 독일식 이동의 감각
재미미디어 | 권석진 기자
입력 | 2025년 11월 16일 06:00
[기사원문]
렌터카 사무실에 들어선 순간, 이번 여정의 성격이 또 한 번 분명해졌다. 대중교통 중심으로 움직이던 독일 체류 일정에 ‘운전’이라는 변수가 추가되는 날이었다. 사전에 예약한 차량은 이코노미급. 자연스럽게 오펠의 소형 모델을 떠올리고 있었지만, 직원이 내민 차량 키에는 선명한 파란색 폭스바겐 앰블렘이 새겨져 있었다. 차선 인식 보조 시스템이 장착된 비교적 신형 모델. 예상하지 못한 배정에 잠시 당황했지만, 동시에 작지 않은 기대감이 생겼다.
차량을 마주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수동 변속기’였다. 한국에서 자동변속기에 익숙해진 지 오래였고, 마지막으로 수동차를 몰아본 건 10년도 훨씬 전의 일이다. 클러치를 밟는 발끝에 전해지는 묵직한 감각이 낯설면서도 어딘가 익숙했다. 겉으로는 자연스러운 척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긴장감이 적지 않았다. 특히 주차장에서 빠져나가기 전, 후진 기어를 넣는 과정에서 잠시 멈칫했다.
기어봉을 R 위치로 옮기려 했지만, 생각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예전에 몰던 차량을 떠올리며 기어봉을 눌러보기도 하고, 좌우로 비틀어보기도 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괜히 뒤차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다행히 침착함을 잃지 않고, 직진 기어만으로 근처 대형마트 주차장까지 이동했다. 일행은 장을 보기 위해 차에서 내렸고, 나는 차량 안에 남아 해결책을 찾았다.
스마트폰으로 짧은 영상을 확인한 끝에 답은 금세 나왔다. 기어 스틱 하단에 달린 작은 링을 들어 올린 상태에서 R로 이동해야 하는 구조였다. 너무 단순해서 오히려 허탈했다. 혼자 웃음이 나왔고, 동시에 긴장이 조금 풀렸다. 차량은 이제 완전히 내 손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본격적으로 도로에 오르자, 처음 5분가량은 클러치와 가속 페달의 균형을 맞추는 데 신경이 쓰였다. 출발과 정지, 저속 주행에서 발끝의 감각이 어색했지만, 신기하게도 몸은 빠르게 기억을 되찾았다. 과거 좁은 골목길을 오르내리며 수동차를 몰던 감각이 서서히 살아났다. 기어를 2단, 3단으로 올리며 속도를 붙이는 순간, 차체는 부드럽게 앞으로 밀려나갔다.
십수 년 만에 다시 느끼는 수동 변속기의 직결감은 인상적이었다. 엔진 회전수와 속도가 그대로 연결되는 감각, 변속 타이밍에 따라 차의 반응이 달라지는 경험은 자동변속기에서는 쉽게 느끼기 어려운 것이었다. 프라이부르크 교외를 벗어나자 도로는 점점 한적해졌다. 시골 마을을 알리는 표지판이 간간이 지나갔고, 멀리서는 포도밭이 언덕을 따라 완만하게 이어졌다.
속도가 서서히 올라가도 도로 위에는 불필요한 긴장감이 없었다. 무리하게 추월하는 차량도, 불안하게 끼어드는 차도 드물었다. 각자의 차가 정해진 규칙 안에서 일정한 흐름을 유지하고 있었다. 엔진음은 낮고 안정적으로 이어졌고, 차창 밖 풍경은 빠르지 않은 속도로 흘러갔다. 그 순간, 단순히 ‘이동 중’이 아니라 독일이라는 공간 속으로 들어와 있다는 실감이 밀려왔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해가 기울며 저녁 노을이 차창 밖을 붉게 물들였다. 운전대 위에 얹힌 손끝에서 묘한 해방감이 전해졌다. 일정에 맞춰 움직여야 하는 책임감 속에서도, 도로 위에서는 분명한 자유가 있었다. 자동차와 도로, 그리고 그 사이를 흐르는 질서. 그날의 주행은 단순한 렌터카 이용 경험을 넘어, 이후 이어질 독일 체류의 이동 방식을 결정짓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