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 16.
✦ 독일에 가다 (16) – 자유를 달리다
렌터카 사무실에 들어섰다. 예약은 이코노미급이라 오펠 소형차가 배정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직원이 건네준 키에는 선명한 파란색 폭스바겐 앰블렘이 그려져 있었다. 차선 인식 시스템이 달린 신형 모델. 예상치 못한 행운이었다.
오랜만의 수동 차량. 10년도 넘게 몰아보지 않았던 클러치가 발끝에 묵직하게 닿았다. 자연스러운 척, 익숙한 척 했지만 솔직히 긴장됐다.
기어를 R에 넣으려 하는데, R으로 기어가 가지 않았다. 예전 대우차처럼 기어 봉을 눌러보기도 하고, 좌우로 비틀어보기도 했지만 허공만 맴돌았다.
침착하게 직진만으로 근처 대형마트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일행은 장을 보러 들어가고, 나는 차 안에 남아 유튜브를 켰다.
해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스틱 해드 아래에 있는 작은 링을 살짝 들어올리면 R로 이동하는 구조.
허탈한 웃음이 새어나왔다.
출발 후 5분 동안은 클러치와 악셀 밸런스가 어색했다. 하지만 이내 몸이 기억을 되찾았다.
그 옛날, 좁은 골목길을 달리던 감각이 되살아났다. 기어를 3단으로 바꾸며 달리는 순간, 차체는 부드럽게 밀려나갔다.
십수 년 만에 느껴보는 수동의 ‘직결감’.
프라이부르크 교외를 벗어나자 도로는 한적해졌다. 가끔씩 시골 마을 간판이 스쳐 지나가고, 멀리 포도밭이 언덕을 타고 흘러내렸다.
속도는 점점 올랐고, 엔진음은 낮게 울렸다. 그 순간, 내가 독일의 한복판을 달리고 있다는 실감이 밀려왔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저녁 노을이 차창 밖을 붉게 물들였다.
핸들을 쥔 손끝으로 묘한 자유가 전해졌다.
자동차와 도로, 그리고 그 길 위의 나.
‘이게 진짜 여행이지.’
그 생각 하나로, 그날 밤까지 미소가 계속 이어졌다.
2025년 11월 16일
재미미디어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