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30.
2025.11.30.
— 뮌스테탈의 풍경과 첫 탐사
재미미디어 | 권석진 기자
입력 | 2026년 11월 30일 06:00
[기사원문]
뮌스테탈은 독일 남서부의 주요 철도 노선에서 살짝 비켜난 곳에 있다. 바트 크로징겐–프라이부르크–바젤을 잇는 굵은 선로에서 갈라져 나와, 숲과 마을 사이를 천천히 파고드는 작은 지선의 종점. 지도상으로는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 그 노선을 타고 들어가 보면 ‘속도’라는 개념 자체가 다른 곳임을 금세 깨닫게 된다.
이 노선을 오가는 열차는 일반적인 기차라기보다는 트램과 지역 열차의 중간쯤 되는 형태였다. 외형은 기차이지만, 정차 방식과 주변 풍경은 트램에 가깝다. 바트 크로징겐에서 뮌스테탈 호프까지 이어지는 이 구간에는 크고 작은 역이 약 11곳 남짓 이어진다. 정확한 숫자를 세지 않아도 좋을 만큼, 역 하나하나가 ‘정거장’이라기보다는 마을의 숨결을 잠시 스쳐 가는 쉼표처럼 느껴졌다.
이번 체류의 목적은 분명했다. 뮌스테탈 호프역 인근에 위치한 스튜디오에서 진행되는 교육 과정을 안정적으로 지원하는 것. 배차 간격은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에 한 대. 한 번 시간을 놓치면 일정 전체가 꼬일 수 있기에, 이 작은 시골 노선이라 해도 결코 가볍게 볼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첫날만큼은 호기심이 계획을 이겼다. ‘종점까지 한 번쯤은 가봐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우리는 트램을 타고 노선의 끝까지 이동하기로 했다. 열차는 속도를 재촉하지 않았다. 숲 사이를 비집고, 작은 마을의 뒤편을 스치고, 갑자기 시야가 탁 트인 초원 한가운데를 지나갔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20대 시절, 유럽의 대도시만을 전전하던 배낭여행과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아이들이 냇가에 발을 담그고 놀고 있었고, 캠핑카와 캐러밴이 줄지어 서 있는 작은 휴양지가 눈에 들어왔다. 텐트를 치고 잔디 위에 누워 햇볕을 즐기는 사람들, 수영장 옆에서 책을 읽는 가족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초원 위에서 풀을 뜯는 말과 소들까지. 그 모든 장면이 마치 오래된 소설 속 삽화처럼 느릿하게 흘러갔다.
이곳의 시간은 분명히 다르게 흐르고 있었다. 무엇을 ‘빨리’ 해야 할 이유가 없어 보였고, 어디에도 서두르는 사람은 없었다. 기차는 단지 사람을 이동시키는 수단이 아니라, 이 지역의 리듬을 몸으로 이해하게 만드는 장치처럼 느껴졌다.
바트 크로징겐으로 되돌아오는 길, 가장 강하게 기억에 남은 곳은 슈타우펜(Staufen) 역이었다. 역에 가까워질수록 차창 너머로 산이 보였고, 그 위에 부서진 채 남아 있는 고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으로 몇 번 본 적은 있었지만, 실제로 마주한 풍경은 전혀 달랐다. 관광지 특유의 과장됨 없이, 그저 그 자리에 오래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그 순간, 마음속 일정표에 하나의 항목이 추가됐다. ‘이번 여행 안에 반드시 슈타우펜에 올라갈 것.’
종점까지의 탐사를 마친 뒤, 우리는 뮌스테탈 역에서 내려 처음으로 동네 마트를 찾았다. REWE. 전날에는 렌트카 문제와 동선 파악으로 정신없이 장을 봤다면, 이날은 달랐다. 시간에 쫓기지 않으니 마트의 구조와 진열, 사람들의 움직임까지 차분히 눈에 들어왔다. 대형 도시의 마트와 시스템은 비슷했지만, 그 안에 담긴 공기는 전혀 달랐다. 생활을 위한 공간이라는 점이 분명했고, 관광객을 의식한 흔적은 거의 없었다.
뮌스테탈에서의 첫 탐사는 그렇게 끝이 났다. 거창한 사건은 없었지만, 기차 한 번, 정거장 몇 곳, 그리고 창밖 풍경만으로도 이 지역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첫 단서들은 충분히 얻을 수 있었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빠르게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체화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가장 먼저 가르쳐준 것은 다름 아닌, 이 시골을 오가는 작은 기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