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 26.
2025.10. 26.
— 식탁 위의 일상에서 시작된 독일식 ‘생활의 리듬’
재미미디어 | 권석진 기자
입력 | 2025년 10월 26일 06:00
[기사원문]
독일 남서부의 작은 도시 바트 크로징겐에 도착한 지 사나흘이 지났지만, 여전히 새벽이면 눈이 떠진다. 밤마다 시계를 확인하며 “이제 자야 하는데”라고 중얼거리다 보면 어느새 새벽 네 시. 시차 때문인지, 낯선 환경에서 오는 긴장감 때문인지 명확히 구분되지는 않는다. 다만 분명한 건, 이곳의 새벽 공기가 점점 몸에 스며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낯선 천장, 낯선 침대, 낯선 공기. 그러나 그 낯섦은 불편함이 아니라 서서히 ‘익숙해짐’으로 바뀌고 있었다.
이른 시간 주방으로 나갔다. 전날 REWE 마트에서 사 온 식재료들이 식탁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한국에서는 늘 보던 양상추였지만, 이곳의 것은 모양부터 달랐다. 잎은 두텁고 묵직했으며, 손으로 만지면 배추처럼 결이 느껴졌다. 씹는 식감은 양상추와 배추의 중간쯤. 단순한 채소 하나에서도 토양과 기후의 차이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햄은 얇게 썬 제품보다 덩어리 형태가 많았고, 치즈는 냉장 진열대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종류가 다양했다. 우유 역시 지방 함량과 원유 처리 방식에 따라 세분화돼 있었다. 우유 한 컵을 따르고, 달걀을 풀어 스크램블드에그를 만들고, 납작복숭아를 잘라 곁들이니 작은 식탁이 금세 풍성해졌다. 특별한 요리는 아니었지만, 재료 자체가 주는 만족감이 컸다.
유럽 출발 전부터 건강을 이유로 식이요법을 시작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곳에서의 식사가 한국보다 더 균형 잡혀 있었다. 가격은 전반적으로 저렴했고, 재료의 질은 기대 이상이었다. 햄, 치즈, 우유, 샐러드 같은 기본 식품의 선택 폭이 넓다 보니 자연스럽게 식단이 단순하면서도 풍성해졌다. ‘무엇을 먹을까’보다 ‘어떤 재료를 고를까’가 더 중요한 질문이 되는 구조였다. 이곳에서의 아침은 빠르게 채우는 끼니가 아니라, 하루의 리듬을 정돈하는 시간에 가까웠다.
오후가 되자 숙소 주변을 천천히 걸었다. 바트 크로징겐은 흔히 ‘조용한 온천 도시’로 불린다. 실제로 거리를 걷다 보면 자동차 소리보다 바람 소리,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더 또렷하게 들린다. 산책로 너머로는 비타클라시카(Vita Classica) 온천장이 자리하고 있었고, 조금 더 가면 라인탈 클리닉의 단정한 건물이 보였다. 이 도시의 중심은 상업시설이 아니라 ‘치유’와 ‘회복’이라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기차역은 여전히 소박했다. 처음 도착했을 때는 지나치게 비어 보였던 공간이었지만, 며칠이 지나자 그 여백이 주는 안정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공기에는 은은한 유황 냄새와 나무 향이 섞여 있었다. 온천 도시 특유의 냄새였지만, 불쾌함보다는 이곳의 정체성을 알려주는 신호처럼 다가왔다.
그날 저녁, 숙소 주인이 찾아와 한 장의 카드를 건넸다. **Gästekarte(게스트카르테)**였다.
“숙박세를 낸 손님들에게 드리는 교통카드예요. 이 지역에서는 KONUS라고 부릅니다.”
설명을 들으니 바트 크로징겐을 포함한 인근 지역의 전철, 트램, 버스를 모두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카드였다. 일정 기간 이상 숙박하면 비타클라시카 온천 무료 입장 혜택도 포함돼 있었다. 처음에는 ‘세금’이라는 단어에 부담이 느껴졌지만, 알고 보니 지역 생활로 들어가는 일종의 입장권에 가까웠다.
이 제도는 관광객을 단순한 방문자가 아니라, 일정 기간 이 도시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방식처럼 보였다.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고, 지역 시설을 자연스럽게 경험하도록 유도한다. 바트 크로징겐이 ‘머무는 도시’로 설계되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그날 밤은 오랜만에 깊은 휴식을 취했다. 창문 밖으로 멀리 기차가 지나가며 철로를 타고 낮은 울림을 남겼다. 도시 전체가 조용히 숨을 고르는 소리 같았다. 침대에 누워 하루를 되짚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의 하루하루는 여행이라기보다, 삶의 연습에 가깝다.”
계획표를 따라 이동하는 일정이 아니라, 생활의 속도에 몸을 맞추는 시간. 그렇게 바트 크로징겐에서의 첫 주는 서서히 마무리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느린 리듬 속에서, 앞으로 이어질 배움과 만남을 받아들일 준비가 조금씩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