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 26.
✦ 독일에 가다 (13) – 바트 크로징겐의 새벽, 느리게 깨어나는 도시
도착한 지 사나흘이 지났지만, 여전히 새벽에 눈이 떠졌다.
밤마다 시계를 보며 “이제 자야 하는데…” 하다가 결국 새벽 네 시쯤엔 일어나 앉는다. 나이 탓인지, 아니면 긴장감이 덜 풀려서인지 모르겠다. 낯선 천장, 낯선 공기,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 낯섦이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다.
주방으로 나가니 어제 마트에서 사온 재료들이 식탁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양상추는 모양은 익숙하지만 두께가 달랐다. 한국의 얇은 잎과 달리 두텁고 묵직했으며, 배추처럼 결이 느껴졌다. 식감은 배추와 양상추의 중간쯤.
햄은 커다란 조각으로 나왔고, 치즈는 냉장고 절반을 채울 만큼 종류가 많았다.
우유 한 컵을 따르고, 스크램블드에그를 익히고, 납작복숭아를 잘라 얹으니 식탁이 금세 풍성해졌다.
식이요법을 시작한 지 몇 달이 지났지만, 이곳에서의 식사는 오히려 더 건강했다.
값도 한국보다 저렴하고, 재료의 질은 뛰어났다. 햄과 치즈, 우유, 샐러드 같은 기본 식품의 선택 폭이 넓어 ‘먹는 즐거움’이 여행의 또 다른 보상이 되었다.
그날의 아침은 느리게, 그러나 충만하게 흘러갔다.
오후가 되어 숙소 주변을 산책했다. 바트 크로징겐은 ‘조용함의 도시’라 불릴 만큼 고요했다.
긴 산책로 너머에는 비타클라시카(Vita Classica) 온천장, 그리고 라인탈 클리닉이 자리 잡고 있었다.
기차역은 여전히 덩그러니 있었지만, 그 ‘빈 공간’이 이제는 이상하게도 마음을 편하게 했다.
공기 중엔 유황과 나무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날 저녁, 숙소 주인이 찾아와 **Gästekarte(게스트카르테)**를 건넸다.
“이건 숙박세를 낸 손님들에게 주는 교통카드예요. 이 지역에서는 KONUS라고 부르죠.”
설명을 들으니 관광세를 낸 대신, 인근 전철·트램·버스를 모두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5박 이상 투숙하면 온천 비타클라시카 무료 입장권도 따라온다 했다.
세금이라 부담스러웠지만, 알고 보니 ‘혜택의 시작’이었다.
그날 밤은 오랜만에 평온했다. 창문 밖으로 멀리 기차가 지나가며 잔잔한 철로의 울림만 남았다.
그 고요 속에서 생각했다.
“여기서의 하루하루는, 계획된 여행이라기보다 삶의 연습 같다.”
그렇게 바트 크로징겐의 첫 주가 끝나갔다.
2025년 10월 26일
재미미디어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