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 9.
2025.11. 9.
— 무료 교통티켓 한 장이 보여준 독일의 이동 질서
재미미디어 | 권석진 기자
입력 | 2025년 11월 9일 06:00
[기사원문]
숙소 앞 작은 버스 정류장. 이른 아침 공기는 차가웠고, 손에는 숙소 주인이 건네준 무료 교통티켓 한 장이 들려 있었다. 숙박객에게 제공되는 지역 교통권이라는 설명을 들었지만, 마음 한켠에는 의문이 남아 있었다. “정말 아무 제약 없이 탈 수 있는 걸까? 구간 제한이나 시간 제한은 없는 건 아닐까?” 도심이 아닌 시골 마을이었기에, 혹시 문제가 생겨도 영어로 충분히 설명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걱정도 함께 따라왔다.
마침 버스가 정류장으로 들어왔다. 조심스럽게 탑승하며 운전사에게 티켓을 내밀 듯 들어 보였다. 그는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으로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그 짧은 순간, 긴장이 풀리며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복잡하게 생각했던 상황이 너무도 간단하게 정리된 순간이었다.
동행인 MZ는 스위스 바젤 방향으로, 나는 프라이부르크 방향으로 향했다. 숙소 앞 정류장에서 서로 다른 노선을 타고 각자의 일정으로 흩어졌다. 여행 중 종종 마주치는 장면이지만, 이곳에서는 유난히 담담하게 느껴졌다. 교통체계가 잘 정리된 공간에서는 ‘헤어짐’조차 자연스러운 이동의 일부처럼 보였다.
버스는 좁은 편도 1차선 도로를 따라 달렸다. 제한속도 표시는 시속 100km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체감 속도는 의외로 안정적이었다. 도로 위 차량은 많지 않았고, 노면 상태는 고르고 깔끔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운전사의 태도였다. 급가속이나 급제동 없이, 일정한 리듬으로 도로 흐름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곳의 도로에서는 ‘빠르게 가는 것’보다 ‘정해진 규칙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 더 중요해 보였다.
곧 프라이부르크 도심에 도착했다. 이틀 전 이미 한 차례 지나온 도시였기에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다시 돌아온 느낌이 반가웠다. 렌터카 인수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아 있었기에, 잠시 도심을 걸었다. 프라이부르크 대성당 앞에 멈춰 섰지만, 며칠 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마주했던 대성당의 압도적인 규모와 화려함이 아직 생생해, 이곳의 인상이 상대적으로 차분하게 다가왔다.
그때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여긴 독일이다.” 화려함보다는 기능, 장식보다는 구조가 먼저 보이는 도시. 투박하지만 묵직한 존재감이 공간 전체에 깔려 있었다. 보여주기 위한 연출보다는, 오랫동안 사용해온 방식이 그대로 남아 있는 듯한 인상이었다.
도시의 또 다른 풍경은 도로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자갈처럼 작은 돌로 촘촘히 이어진 블록 길 사이사이로, 실개천처럼 좁은 수로가 이어져 있었다. 프라이부르크의 상징 중 하나인 이 수로에는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자연스럽게 발을 담그고 있었다. 신발을 벗어 들고 물에 발을 넣은 채 이야기를 나누거나, 잠시 더위를 식히는 모습이 일상처럼 펼쳐졌다.
근처 상점에서는 작은 나무배를 판매하고 있었는데, 아이들은 그 배를 수로에 띄워 놓고 따라 뛰어다녔다. 배가 돌 틈에 걸리면 웃음이 터졌고, 다시 물길을 잡아주며 놀이가 이어졌다. 관광객을 위한 연출이기보다는, 오랫동안 이어져 온 도시의 생활 풍경처럼 보였다. 실용을 중시하는 도시 한가운데에서, 이렇게 자연스러운 여유가 공존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이날의 이동은 단순한 ‘프라이부르크 방문’이 아니었다. 무료 교통티켓 한 장으로 시작된 짧은 버스 이동은, 독일의 교통과 도시가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를 체감하게 해주는 경험이었다. 복잡한 설명 없이도 작동하는 시스템, 규칙을 신뢰하는 사회, 그리고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여유. 길 위에서 만난 이 장면들은 이후 이어질 독일 체류 일정의 배경이 되어,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여행의 결을 바꿔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