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③|교육과 삶이 함께 갈 수 있을까 

일요일에는 왜 교육을 쉬려고 할까 

평일·명절에는 유연하게, 주일은 가급적 지킨다… 교육생의 현실과 교육자의 가치가 함께 가는 자이로토닉재미의 교육문화 


재미미디어 | 권석진 기자
입력 | 2026년 9월 27일 06:00 

[기사원문]

교육생의 상황에 맞추는 교육을 강조한다면 교육일정은 언제든 열려 있어야 하는 것일까.

평일에 시간이 없다면 주말에 교육하고, 주말에도 시간이 없다면 휴일이나 명절을 이용하면 된다. 교육생이 원하는 시간에 최대한 맞추는 것이 성인학습자를 배려하는 가장 좋은 방법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이로토닉재미 강남평생교육원의 교육일정을 살펴보면 조금 흥미로운 원칙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평일 일정은 비교적 유연하게 조정한다.

필요하다면 12일 과정을 목·금·토요일 3일씩 4주에 걸쳐 진행하기도 한다. 교육생들의 직업과 기존 수업을 고려해 교육일정을 나누고, 상황이 맞는다면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 연휴도 교육기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런데 일요일은 조금 다르다.

가능하면 교육일정에서 제외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자이로토닉재미 강남평생교육원의 신영아 원장이 크리스천으로서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어떠한 경우에도 일요일에는 교육하지 않는다는 절대적인 원칙을 세운 것은 아니다. 교육생들의 상황이나 전체 교육일정 때문에 불가피하게 일요일 교육이 필요한 경우라면 예배를 마친 오후 시간부터 교육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조정하기도 한다.

평일과 명절까지 교육생의 상황에 맞추려고 노력하면서도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신앙의 시간을 지키려는 것이다.

이번 기획연재의 마지막 이야기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교육생의 삶을 존중하는 교육기관이라면 교육자의 삶과 가치 역시 존중받을 수 있을까.

그리고 서로 다른 가치와 생활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는 평생교육기관에서 이러한 원칙은 어떻게 하나의 교육문화가 될 수 있을까.


유연하다는 것은 ‘원칙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지난 두 편의 기획기사에서 자이로토닉재미 강남평생교육원의 교육일정을 살펴보면 공통적인 특징이 있었다.

교육의 기준과 필요한 교육일수는 지키되 날짜를 가능한 범위에서 유연하게 운영한다는 것이다.

12일 과정이라고 해서 반드시 12일을 연속해서 교육하기보다 목·금·토요일 3일씩 네 차례에 걸쳐 진행할 수 있다.

평소 직장이나 기존 회원 수업 때문에 연속된 교육시간을 확보하기 어려운 교육생이라면 명절이나 연휴를 활용하는 방법도 찾는다.

그 이유는 교육을 쉽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교육생이 현재의 직업과 경제활동, 기존 회원과의 약속을 모두 포기하지 않고도 새로운 전문교육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유연함에는 자칫 한 가지 오해가 따라올 수 있다.

‘교육생에게 맞춘다면 모든 요구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지는 않다.

좋은 교육에서 유연함은 원칙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무엇을 지켜야 하고 무엇을 조정할 수 있는지를 구분하는 것에 가깝다.

자이로토닉재미에게 주일은 그 구분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다.


원장에게 일요일은 단순한 휴일이 아니라 ‘주일’

대부분의 사람에게 일요일은 휴일이다.

한 주 동안 일하고 쉬는 날이기도 하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거나 개인적인 취미를 즐기는 날이기도 하다.

하지만 크리스천에게 일요일은 또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예배와 신앙생활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일요일은 단순히 ‘일하지 않는 날’이 아니라 주일로서 의미를 가진다.

신영아 원장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교육일정을 구성할 때 가능하면 일요일에는 교육을 진행하지 않는 방향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 원칙을 교육생에게 종교적으로 요구하는 것과 교육자가 자신의 신앙에 따라 자신의 일정을 운영하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라는 점이다.

교육생에게 특정한 신앙을 요구하거나 종교생활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다.

교육내용 역시 국제 지도자교육이라는 본래의 목적에 따라 진행된다.

다만 교육을 담당하는 사람이 자신의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능한 한 지키면서 교육일정을 구성하는 것이다.

평생교육기관에서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것은 교육생의 가치만 인정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교육자 역시 한 사람의 생활인이고 자신의 가치와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사실도 함께 인정할 필요가 있다.


교육생의 삶을 존중했다면 교육자의 삶도 존중해야 한다

이번 3부작 기획연재는 처음부터 ‘시간’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단순히 교육시간표를 어떻게 짜는가에 관한 기사는 아니었다.

1편에서는 현직 강사가 새로운 자격교육을 받기 위해 자신의 경제활동을 모두 중단해야 하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살펴봤다.

그래서 12일 교육을 12일 연속으로만 진행하지 않고, 가능한 과정에서는 목·금·토 3일씩 4주에 걸쳐 운영하는 방식이 소개됐다.

2편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명절을 살펴봤다.

누군가에게 명절은 쉬는 시간이지만 평소 직장이나 회원 수업 때문에 긴 교육시간을 확보하기 어려운 사람에게는 오히려 교육에 참여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반대쪽도 볼 필요가 있다.

교육생의 직업을 존중하고,

교육생의 수입을 고려하고,

교육생의 가족과 생활을 생각했다면,

교육을 담당하는 사람의 삶도 존중되어야 하지 않을까.

신영아 원장에게 주일예배가 중요한 삶의 일부라면 그것 역시 교육일정을 만드는 과정에서 고려할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이다.

학습자 중심 교육이 교육자의 희생을 전제로 해서는 지속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일요일 교육을 무조건 거절하지는 않는다

원칙과 현실은 때때로 충돌한다.

교육생 여러 명의 일정을 맞추다 보면 다른 선택이 어려운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교육과정의 전체 일정이나 참여자들의 사정 때문에 일요일을 포함하지 않으면 교육 자체를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도 있을 수 있다.

자이로토닉재미는 이런 경우까지 무조건 일요일 교육을 하지 않는다는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가능하면 주일을 지키되, 부득이한 경우에는 예배를 마친 뒤 일요일 오후부터 교육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서로의 일정을 조정한다.

이 지점에서 이 교육원의 또 다른 특징이 나타난다.

교육생에게만 일방적으로 맞추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교육자의 원칙만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서로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가능한 방법을 찾는다.

어쩌면 성인교육에서 필요한 유연함은 바로 이런 모습에 가까울 수 있다.

모든 원칙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원칙과 현실 사이에서 함께 가능한 지점을 찾는 것이다.


‘주일을 지킨다’는 것을 기관의 종교교육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언론사부설 평생교육시설에서 운영자의 종교적 가치가 언급될 때는 분명한 구분도 필요하다.

운영자의 개인적인 신앙과 교육생이 받아야 하는 교육은 별개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자이로토닉재미에서 국제 지도자교육에 참여하기 위해 특정 종교를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교육생의 종교 역시 교육 참여의 기준이 될 이유가 없다.

종교가 없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일요일 교육을 가급적 피하는 운영방식은 교육생에게 기독교적 신앙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담당하는 사람이 자신의 신앙생활과 직업적 역할을 조화시키는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이 구분은 중요하다.

자신의 가치를 지키는 것과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가치를 강요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교육기관은 다양한 사람이 만나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의 차이를 없애려고 하기보다 각자의 삶과 가치를 인정하면서 공동의 교육목표를 이루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평생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 전체’를 보는 것

평생교육기관을 찾는 사람을 단순히 ‘수강생’이라는 이름으로만 보면 많은 것이 보이지 않는다.

수업에 앉아 있는 한 사람에게는 직업이 있다.

가족이 있고,

경제적인 책임이 있으며,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생활방식도 있다.

지난 기사에서 현직 강사의 수입을 이야기했던 것도 같은 이유다.

강사가 교육에 참여하기 위해 기존 수업을 취소하면 수입이 줄어들 수 있다. 그것은 단순히 교육과 무관한 개인 사정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성인학습자가 실제로 교육에 참여할 수 있느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조건이 된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게 종교는 생활의 작은 일부일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의 중요한 기준일 수 있다.

성인교육이 사람의 삶 속에서 이루어진다면 교육기관 역시 이러한 서로 다른 배경을 완전히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결국 성인학습자를 존중한다는 것은 수업시간에만 친절하게 대한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그 사람이 이미 살아가고 있는 삶을 인정한 상태에서 교육을 시작한다는 뜻이다.


마스터트레이너이기 전에 한 사람의 교육자

자이로토닉재미 강남평생교육원에는 마스터트레이너가 있다.

국제 지도자과정을 교육할 수 있다는 것은 교육기관으로서는 중요한 전문적 기반이다.

그러나 이번 기획기사에서 주목하는 것은 자격이나 직함 자체가 아니다.

그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도 하나의 삶을 살아가는 교육자라는 점이다.

마스터트레이너라고 해서 언제든 교육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교육을 준비해야 하고,

자신의 수업도 진행해야 하며,

가족과 개인적인 삶도 있다.

그리고 신영아 원장에게는 신앙생활 역시 그 삶의 일부다.

오히려 교육자가 자신의 삶을 지속가능하게 유지하는 것은 장기적인 교육의 질과도 연결될 수 있다.

교육생에게 평생학습을 이야기하면서 교육자 자신은 휴식과 삶의 중요한 가치를 모두 포기해야 한다면 그 구조는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좋은 교육은 교육생만 지속가능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교육자에게도 지속가능해야 한다.


교육 일정에는 그 기관이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이 담긴다

교육기관의 철학은 거창한 문구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작은 운영방식에서 더 분명하게 나타날 때가 있다.

수업을 언제 시작하는가.

교육생이 직장 때문에 시간을 내기 어렵다고 했을 때 어떻게 대응하는가.

현직 강사가 기존 회원 수업 때문에 고민할 때 어떤 대안을 찾는가.

명절밖에 시간이 없는 사람에게 무조건 다음 교육을 기다리라고 할 것인가.

반대로 교육자에게 중요한 시간이 있을 때 그것을 무시하고 교육만 우선할 것인가.

이런 작은 선택들이 모여 교육기관의 문화를 만든다.

자이로토닉재미가 추구하는 것은 교육생에게 무조건 맞추는 교육도, 교육기관의 편의에 교육생이 무조건 따라오는 교육도 아니다.

가능한 범위에서 서로의 상황을 확인하고 교육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는 것이다.


‘일요일에 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유다

사실 일요일에 교육하지 않는 센터는 특별하지 않을 수 있다.

많은 기관이 일요일에 문을 닫는다.

따라서 단순히 ‘일요일에 수업하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이번 이야기의 핵심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왜 그렇게 하는가이다.

자이로토닉재미의 경우 그것은 운영자의 신앙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 원칙을 현실과 어떻게 조화시키는가이다.

주일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해서 교육생에게 같은 신앙을 요구하지 않는다.

가능하면 일요일 교육을 피하지만 교육생의 상황 때문에 정말 필요한 경우에는 예배 이후 오후 교육이라는 방법을 찾는다.

즉, 자신의 가치를 없애지도 않고 상대방에게 그대로 강요하지도 않는다.

가치를 지키되 관계 속에서 조정하는 방식이다.

이런 태도는 종교의 문제를 넘어 교육기관의 운영에서도 생각해 볼 만한 지점이다.


교육생에게도 각자의 ‘지키고 싶은 시간’이 있다

이 원칙을 교육자에게만 적용할 필요는 없다.

교육생에게도 자신이 지키고 싶은 시간이 있을 수 있다.

누군가는 일요일에 교회에 간다.

누군가는 다른 종교적 의무가 있을 수 있다.

누군가는 주말 중 하루만큼은 가족과 보내고 싶어 할 수도 있다.

어린 자녀를 돌봐야 해서 특정 시간에는 교육에 참여하기 어려운 사람도 있다.

교육기관이 모든 개인 사정을 완벽하게 맞출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그러한 사정을 단순히 ‘교육에 대한 의지가 부족하다’고 판단하지 않는 것은 가능하다.

성인에게 교육은 삶의 전부가 아니다.

삶의 한 부분이다.

평생교육은 바로 그 사실을 인정할 때 현실적인 힘을 갖는다.


교육을 오래 하기 위해 때로는 쉬는 시간도 필요하다

전문성을 키우는 과정에서는 열정이 중요하다.

그러나 열정이 언제나 더 많은 시간, 더 많은 수업, 더 많은 교육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교육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쉬는 시간도 필요하다.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도 필요하고 자신의 가치와 삶을 돌아보는 시간도 필요하다.

교육생에게도 그렇고 교육자에게도 그렇다.

평생교육이라는 말에는 어쩌면 중요한 전제가 하나 숨어 있다.

평생 배우려면 평생 지속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짧은 기간 모든 것을 쏟아붓고 지쳐버리는 방식보다 자신의 직업과 가족, 휴식과 가치를 유지하면서 배움을 계속하는 것이 평생교육이라는 개념에 더 가까울 수 있다.


3편의 이야기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돌아온다

이번 「교육과 삶이 함께 갈 수 있을까」 기획연재는 국제 지도자과정의 일정에서 시작했다.

1편 「12일 교육, 꼭 12일 연속이어야 할까」에서는 현직 강사가 자신의 회원과 수입을 유지하면서도 전문교육에 참여할 수 있도록 12일 교육을 목·금·토 3일씩 4주에 걸쳐 진행하는 방식 등을 살펴봤다.

2편 **「명절도 누군가에게는 배울 수 있는 시간이다」**에서는 평소 시간을 확보하기 어려운 성인학습자에게 명절과 연휴가 오히려 교육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다뤘다.

그리고 마지막 3편에서는 반대편에서 교육자의 시간을 바라봤다.

교육생에게 맞추기 위해 평일과 명절까지 유연하게 열어두면서도, 크리스천인 교육자가 자신의 신앙에 따라 주일을 지키고자 하는 가치 역시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세 가지 사례는 서로 달라 보이지만 결국 같은 질문을 향한다.

교육을 위해 사람이 존재하는가, 사람을 위해 교육이 존재하는가.

전문적인 자격교육이라면 당연히 지켜야 할 기준이 있다.

정해진 교육과정과 필요한 교육일수를 임의로 줄여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 기준을 지킨다는 것이 교육받는 사람의 모든 삶을 교육기관의 달력에 맞추라는 의미일 필요는 없다.

5일이면 필요한 5일을 제대로 교육하고,

12일이면 필요한 12일을 제대로 교육한다.

그러면서 현직 강사가 자신의 일을 계속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필요하다면 연휴를 활용하며, 교육자의 삶에서 중요한 주일도 가능한 한 존중한다.

그리고 부득이하게 서로의 일정이 충돌한다면 다시 방법을 찾는다.

교육의 기준은 분명하게, 시간의 운영은 유연하게, 서로의 삶은 존중하면서.

자이로토닉재미 강남평생교육원이 추구하는 교육일정의 방향을 세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이와 같다.

결국 평생교육은 오래 가는 교육이어야 한다.

배우는 사람의 삶도 지속되어야 하고,

가르치는 사람의 삶도 지속되어야 한다.

교육생이 직업과 경제활동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배우고, 교육자가 자신의 중요한 가치를 모두 내려놓지 않으면서 가르칠 수 있을 때 교육은 어느 한 시기의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삶 속에서 계속되는 배움이 될 수 있다.

교육과 삶이 함께 갈 수 있을까.

이번 세 편의 기획연재를 통해 자이로토닉재미 강남평생교육원이 내놓은 답은 거창하지 않다.

교육을 사람에게 맞추기 위해 노력하되 교육의 기준까지 낮추지는 않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교육생뿐 아니라 교육자 역시 한 사람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다.

어쩌면 평생교육에서 말하는 ‘평생’은 교육기간이 길다는 뜻만이 아닐 것이다.

삶을 포기하지 않고도 배움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교육과 삶이 함께 가야 하는 이유다.